목차
1. 실제인물과 사건이 소재가 된 작품
이 작품은 수리남에서 마약을 밀매하던 조봉행이라는 사람과 K 씨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윤종빈 감독은 실제 사건을 접하고는 이게 실화라면 말이 되지 않고 황당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 인물인 K 씨를 직접 만나고 나서 그 의문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K 씨를 처음 만났을 때 건장하고 인간적 신뢰가 생기는 느낌이었고 어디서든 잘 생존할 것 같은 인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이런 인물이라면 3년 동안을 국정원의 언더커버로서 마약왕 옆에서 정말 위험천만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겠구나 이해가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실제 인물인 K 씨의 증언을 대략 80% 정도 반영해 강인구의 전사와 인물 설정에 반영을 했습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남매들을 혼자 키운 점, 알고 지내던 여성에게 불쑥 프러포즈를 해서 결혼을 한 점은 모두 K 씨에게서 직접 들은 것입니다. 다만 K 씨 말로는 자기가 머리를 빡빡 밀고 차이나타운에 들어가서 중국 갱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는데, 이건 실화가 마치 디파티드 같아서 각색을 하는 과정에서 되려 무게감을 덜어내고 유머를 더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실제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K 씨는 원래 친구를 통해서 수리남에서 선박용 특수 용접봉을 판매하는 사업을 합니다. 그 판매를 중개하던 조봉행이 대금을 주지 않아서 어려움에 처하자 주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청하다가 국정원의 협조요청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 한 번은 K 씨가 국정원과 통화를 하다가 조봉행의 부하에게 발각돼서 죽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때 K 씨는 내가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하냐 하면서 위기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원래 그는 매일 권총을 들고 잠에 들면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다가 위와 같이 죽기 직전까지 가는 사건을 겪으면서 이제 나는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져서 조봉행에게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면서 마음을 놓았다고 합니다.
2. 하정우의 제안
과거 영화사 퍼펙트 스톰에 들어온 15쪽짜리 수리남 기획안을 하정우가 접하게 됩니다. 남미에서 벌어지는 마약 관련 작품은 많지만 아시아인들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 흥미를 느껴 윤종빈 감독에게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작품화 제안을 합니다. 처음에는 거절당하고 이 기획안은 그냥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윤종빈 감독이 영화 '공작'을 완성시키고 나서 수리남을 시리즈물로 만들면 괜찮겠단 생각이 들어 그제야 수리남 제작이 시작됩니다.
감독은 본 작품에서 특이한 형태의 언더커버를 하는 강인구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전사가 중요하다고 보았고, 만약 전사를 생략하면 2시간 분량을 맞추기는 하겠지만 다른 언더커버물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아 시리즈물을 만들기로 정한 것입니다. 원래 감독은 8부작을 생각하고 tvn과 논의를 했는데 tvn 측에서는 최소 10부작을 되어야 한다고 하여 그건 너무 길다고 생각해 tvn과 계약이 결렬됐습니다. 이후 넷플릭스와 손을 잡아 6부작을 완성시킨 것입니다.
감독은 우선 마약과 코카인의 역사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범죄와의 전쟁에서 이미 선행 학습을 했을 테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독이 가장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바로 미국의 마약법입니다. 마약이 미국에 유통되면, 그러니까 미국 땅을 밟는 순간 미국은 당사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작정 수사를 시작합니다. 이런 사실이 본 작품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또 여성 서사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남자들이 더 좋아하고 여성 취향이 아니라고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공작을 제작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국정원 실장을 여성으로 하면 현실성이 떨어질 것 같고, 북한 간부를 여성으로 하면 억지스럽게 느껴져서 결국 모두 남성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수리남에서도 국정원 팀장을 여성을 하자니 억지스럽고 양날의 검 같아서 결국 취소했다고 합니다.
3. 영화 주요 촬영지
영화는 수리남을 배경으로 하지만 수리남 현지에서 촬영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촬영은 크게 제주도, 전주, 부산 그리고 도미니카 공화국이 선택됐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그와 외경이 비슷한 도미니카 공화국 촬영이 분량이 많았고 두 달 동안 거의 40회 차를 찍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밀림 장면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찍었는데 가는 길이 험하고 이동거리도 멀어서 도심에서 2~3시간은 가야 촬영장이 나왔습니다. 핸드폰은 안 터지고 화장실은 5분 거리에 있고 날씨가 너무 습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또 소나기가 내리면 바닥이 진흙밭이 되어서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국내 촬영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산토 도밍고 대통령궁을 빌려서 찍은 장면들도 있는데요. 한 번은 해가 지는 장면을 찍을 때 실제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들어온다는 연락이 있어서 촬영을 미뤄야 하나, 아니면 헬기 도착 시간을 좀 늦추고 남은 분량을 마저 촬영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도미니카 공화국 측에서 호의적으로 잘 협조를 해주어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고 합니다. 원래 절반 이상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그게 어려워져 제주도를 선택했습니다. 감독이 예전에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장소로, 여기를 꾸미면 남미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미에서 자랄 법한 야자수와 식물들을 심고 오두막도 세트로 지었습니다. 또 여기에 후반 작업 때 그래픽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3부 엔딩과 4부 초반의 브라질 국경 장면은 제주도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또 전요한 저택에서 연회가 열리는 마당 같은 장소 역시 제주도에서 촬영을 한 것입니다.
차이나타운은 전주에 대규모 오픈 세트를 지어서 촬영을 했습니다. 국정원 안가 장면은 부산에서 촬영, 사이비 종교 신도들이 나오는 장면은 무주에서, 끝으로 교도소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실제 교도소에서 촬영했습니다. 참고로 보조 출연자로 나오는 인물들은 이 교도소의 모범수들이었다고 합니다.
4. 마약물이 아닌 언더커버 드라마 '수리남'
사실 마약왕 서사라면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다룬 넷플릭스의 나르코스 시리즈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수리남의 영어 제목 역시 나르코 세인츠이기도 합니다. 하정우는 이런 점에 대해서 수리남의 차별점을 아시아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존의 남미와 중미를 배경으로 한 나르코스와는 달리, 수리남은 아시아 캐릭터가 주가 되는 것이 독특하다는 그의 설명입니다. 또한 감독 역시 수리남은 마약물이기보단 마약은 그냥 배경이고 언더커버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실제 사건에서 조봉행은 원래 사이비 목사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마약 관련된 일을 하지도 않았고 처음에는 선박 냉동 기사로 일을 하다 8년간 수리남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1994년 10억 원을 횡령한 뒤,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수리남으로 도주하게 됩니다.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하고 여기서 생선 가공 공장을 차려 면세유를 밀매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조봉행은 피쉬맨이었던 셈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 사업이 어려워지자 그는 악명 높은 칼리 카르텔과 손을 잡고 마약을 유통하기 시작합니다. 또 대통령과 정말 가까웠는데 2010년 대통령에 취임한 대시 바오테로서가 과거 군인일 때 마약 밀매에 사용하던 선박을 조봉행이 수리를 해주면서 인연이 맺어집니다. 아시다시피 대시 바오테로서는 2002년 마약 밀매 협의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은 마약 사범 출신 대통령입니다.
조봉행이 목사로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처지가 어려운 한국인 교포들을 고액 알바로 꼬드겨 마약 밀매에 끌어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보석 원석을 운반해 주면 500만 원을 주겠다는 말에 당사자들은 마약인 줄도 모르고 이 밀매에 가담합니다. 조봉행에게 속아서 마약을 운반하다가 교도소에 수감된 주부 장모 씨의 사연이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유럽 쪽으로 마약을 유통한 사건들을 통해 조봉행의 정체를 알게 된 검찰은 2005년 6월 그를 인터폴에 수배합니다. 그리고 2007년 10월 국정원이 본격적인 검거에 나서죠.
조봉행은 2009년 7월 23일 상파울루 과룰류스 공항에서 브라질 경찰에 붙잡힌 뒤 2011년 국내로 압송되었습니다. 징역 10년형과 벌금 1억 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2016년 4월 건강 악화로 사망합니다. 작품 속 마약왕 전요한은 감독이 실화에서 가장 크게 각색한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합니다. 원래는 K 씨가 홍어 사업을 하러 홀로 수리남에 갔다가 자기 일을 도와주는 사람 집에 같이 살았는데, 그게 알고 보니 마약왕 조봉행이었던 거죠. 근데 이 실제 이야기를 감독 스스로 납득이 잘 안 되고 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마약왕에게 속는 모습이 좀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선택한 설정이 바로 직업만으로 믿음을 주는 목사라는 직업이었습니다. 목사로서 강인구에게 착한 척 접근했다가 뒤통수를 때리며 본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임팩트를 의도한 것이죠. 또 감독의 자료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섬에서 사이비 목사가 400명을 강제 노역을 시키는 사건이 있었다고 아니 허무맹랑한 실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품의 마지막에 나오는 야구공은 먼저 박찬호 재단의 협조를 받아서 사인을 직접 받아 촬영을 한 것입니다. 다만 작품 속에서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해서는 감독조차 확실한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야구공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요한이 강인구에 대해서도 느낀 동질감, 즉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저 놈은 나랑 같은 부류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고, 박찬호 사인볼을 주며 신뢰를 표한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5. 빛나는 조연배우들
첸진을 연기한 배우는 장첸입니다. 범죄도시의 장첸이 아니라 배우 이름이 장첸이죠. 아마 과거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이나 왕가이 감독 영화를 즐겨보신 분들에겐 익숙한 배우일 것입니다. 또 최근에 듄에도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여튼 이 첸진의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존재감이 있는 배우가 필요해서 감독이 공을 들여 장첸을 캐스팅한 것입니다.
최창호의 대사 '식사는 잡솼어'가 유튜브와 sns 등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패러디됩니다. 좋은 반응을 이끌었는데요. 이 말은 배우 박해수가 실제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라 유행어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단 대사를 할 때에는 묘하게 입에 잘 붙었다고 하는데 배우가 따라 하기 좋은 대사는 보는 관객도 따라 하기 좋기 마련입니다.
또 본 작품에서 최창호와 구상만 두 캐릭터를 연기했는데요. 구상만을 연기할 때는 뭔가 과한 양아치처럼 보이기보단 그냥 자신의 캐릭터 틀 안에서 장난스러움을 표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작품 내부적으로 따져봐도 너무 과하면 의심받기 마련인데 그런 점을 고려한 것이죠. 대신 박해수는 최창호를 더 딱딱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컨대 대사도 감독이 쓴 대로 받아들이면서 더 문어체처럼 구사해 더욱 국정원스러운 캐릭터로 다듬었습니다. 조봉행과 K 씨처럼 최창호를 모델로 한 실제 국정원 직원도 있지만 박해수는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국정원 고위직일 테니 만날 수도 없고 만나서도 안 됐을 테 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촬영할 때 현지에서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정원 직원들이 몇 명 왔는데 최창호 실존인물에 대해서는 유명한 사건이라고만 하고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박해수는 최창호가 전요한을 쫓는 핵심 동기가 국가를 위한 사명감인지 개인적인 욕심인지 헷갈렸지만 개인적인 쪽으로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강인구 같은 민간인을 이런 위험한 현장에 밀어 넣으면서 단순히 국가 헌신만으로 일했을 것 같진 않고 뭔가 집착이 있었을 것으로 본 겁니다. 강인구를 감옥에 넣은 사람도 사실 최창호인데 그것도 집착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또 국가에 대한 사명감으로 동기를 잡으면 너무 광범위한 느낌이라 캐릭터를 만들기에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종합해서 강인구와 최창호의 신뢰가 붙었다가 떼어지는 그 갈등의 셈세한 부분에 집중해서 연기에 임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정우 하면 생각나는 게 먹방 연기인데요. 이번 작품에선 크게 눈에 띄지 않는데 사실 하정우가 과거 군도를 찍을 때 대파 먹방 등을 노리고 이 먹방 연기를 의도적으로 많이 배치했는데 의외로 별 반응이 없고 안 먹힌다고 생각해서 그냥 이제는 먹방 연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 티저 영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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